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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인의 향기>법적 근거없이 시작된 ‘수도권 그린벨트’
  • 편집국
  • 등록 2023-06-21 15:59:03
  • 수정 2023-07-17 2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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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벨트란 것 있지!① - 김의원


수도권 그린벨트계획을 작성하다


1971년 9월 어느 날 경제수석이 도로국장과 빨리 입궐(入闕)하라는 연락을 받고 김용석(金容奭) 국장과 경제수석실로 갔더니 “여기가 아닙니다.” 하면서 본관으로 가자고 했다. 각하(閣下) 집무실에 당도하니 이미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와 있었다. “이봐 도로국장, 망우리(忘憂里) 공동묘지 앞의 국도(國道) 오르막 근처 빨간 기와집 한 채 있지?” “네, 있습니다. 각하!” “거기가 바로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란 말이야. 그런데 서울시 쪽은 노폭(路幅)이 30m이고 경기도 쪽은 7m란 말이야.” 하면서 도면에 서울에서 뻗어 나가는 11개의 방사선도로(放射線道路)를 그리고 하루빨리 시정(是正)하라는 지시를 한 다음, 필자를 보고 “그린벨트란 것 있지!” 하면서 “전국 대도시 주변에 그린벨트를 치고 수도권(서울) 그린벨트계획을 작성해 오라.”고 하였다.


그날로 종합청사 지하에 비밀작업실을 설치하고 서울시에서 2명의 직원을 차출 받아 작업을 시작했다. 이작업에서 서울 북쪽의 군부대는 전부 그린벨트에 포함시켰다. 그러면서 불광동(佛光洞) 북쪽의 기자촌(記者村)은 당시 건설 중이었기 때문에 그린벨트에서 제외했다. 박 대통령의 그린벨트에 포함시키라는 지시를 어기고 1주일 후 다시 가지고 갔더니 “왜 포함 안 시켰느냐!”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남북이 다시 전쟁을 해서 불행히도 우리가 밀렸다 할 때 기자촌 바로 북쪽에 있는 공릉천 계곡에 인민군 1개 사단쯤 집결시켜놓고 우리는 북한산 쪽에서 집중포격을 해야 할 곳인데 집을 짓게 할 수 있느냐?” 는 것이었다. 과연 전략가다운 발상에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필자 자신의 무식을 이때만큼 뼈저리게 느낀 적은 없었다.


“안 돼! 건설부를 거쳐”


초기 그린벨트는 법적근거 없이 시작했다. 6개월 후에 도시계획법을 개정하여 ‘개발제한구역(開發制限區域)’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린벨트 경계는 측량하여 표석(標石)을 설치했는데 몇 개 지역에서 밤에 표석을 이동시키는 일이 있어 경계선을 순시하는 순찰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이 일반 행정 업무를 직접 결재하는 것은 그린벨트뿐이었다.


국방장관은 군부대의 초소위치까지 통제를 받는 것이 싫어서 “각하! 군부대의 그린벨트 문제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하고 필자가 보는 앞에서 두 번이나 건의했으나 그때마다 “안 돼! 건설부를 거쳐.”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녹지관리과의 윤준섭 계장 앞에는 항상 군의 고급장교(중령·대령)들이 그칠 날이 없었다. 때로는 장군들까지 오는 수가 많았다. 그린벨트를 처음 시작할 무렵 신문·방송에서 연일 그린벨트 운운하니까 출입기자들과 국회의원들까지 “그게 뭐냐”고 궁금해 하기에 필자는 이들에게 여러 번 설명을 하기도 했다. 당시 대구에 있는 2군사령부의 어떤 장군은 잘 모르고 부친의 산소를 그린벨트 안에 썼다가 예편당하기도 했다.


그린벨트를 시작한 초기 2년간 그린벨트를 담당한 공무원 중 1천여 명이 징계를 당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엄격한 것이었느냐 하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이때부터 지방 공무원들은 그린벨트 담당업무의 보직을 기피하는 사태가 심화됐다. 1975년 여름 박 대통령은 전국 그린벨트 관리 상태를 총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필자는 대구와 부산지역을 둘러보았는데 대구에 가니까 소가 송아지를 낳는데 마구간이 좁아서 마구간 옆에 비닐로 송아지 막사를 지었는데 이것을 적발했다기에 과잉단속이라고 나무란 적이 있다.


부산지방의 양산(梁山)군청에 들렀더니 군수 책상위에 달랑 그린벨트 관리규정만 있고 군수는 농구화를 신고 집무하고 있기에 “왜 이러느냐?”고 물었더니 양산군은 80%가 그린벨트이기 때문에 그린벨트 관리가 업무의 전부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수녀(修女) 5명이 국장실에 왔다. 사연인즉 우리는 해수욕장에 갈 수도 없는 처지라 경기도 모처(某處) 외진곳에 풀장을 하나 만들었단다. 일반인이 볼 수 없게 주변에 나무를 심기까지 했는데 군청에서 나와 메꾸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하도 사정이 딱해서 박 대통령에게 결재를 요청했더니 “이봐! 천주교 수녀들이 이런 일이 있으면 개신교에도 불교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냐? 사정은 딱하지만 이것들을 다 해주어야 되는가?” 했다.


1973년 일본에서 시모고베 아쓰시 일본국토청 국토정책국장 국회수상실(國會首相室)에서 다나카 카쿠에이(田中角榮) 수상을 만난 일이 있다. 이 자리에서 수상이 국장을 보고 동경(東京)에 빨리 그린벨트를 치라는 지시를 하기에 그린벨트 얘기를 누구한테서 들었느냐 했더니 박 대통령한테서 들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 박 대통령은 “새로운 시가지나 도시건설이 필요할 때 그린벨트 밖에 하라.”는 말하자면 도시개발정책을 지시했는데 요즘의 한국은 그린벨트를 해제한 자리에 아파트나 짓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필자는 박 대통령이 그린벨트 얘기를 누구한테서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박 대통령과 안산 신도시


1976년 7월 21일 수도권 인구 분산 문제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나가라고만 하지 말고 나갈 곳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다시 말하면 신도시를 건설하라는 것이었다. 이 지시가 떨어지자 건설부는 김재규(金載圭) 건설부장관과 구자춘(具滋春) 서울특별시장을 비롯한 건설부와 서울시 실무자들로 구성된 낚시복 차림의 현지답사반을 봉고차를 빌려 서울의 동남쪽 즉 경기도 광주와 용인, 이천 및 여주 지역을 둘러보았다. 


결과적으로는 이 지역이 한강유역이기 때문에 새로운 도시의 폐수가 팔당수원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며칠 후 조사반은 경부고속도로 서남쪽인 안중(安仲), 조암(朝岩), 발안(發安) 및 반월(半月·안산)을 답사하고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신도시건설은 첫째로 성공해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 즉 반월(半月·안산)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대한건설진흥회 발간 ‘국토교통인의 향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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