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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인의 향기>경부고속도로, 77명 순직이 만들어낸 대역사
  • 편집부
  • 등록 2023-12-26 22: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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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음과 땀과 눈물 ‘경부고속도로’①-최광규


공사 중 77명 순직


경부고속도로는 1968~1970년 건설한 우리나라 토목사상 최대규모였으며,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신기원이다. 연장 428km의 대역사를 우리는 단지 2년 반 만에 준공했다. 요즈음의 현대적인 공법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다시 건설하려면 그 시간 안에 준공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77명의 희생자가 증명하듯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단순한 토목공사가 아니라 일종의 전쟁이었다. ‘보다 빠르게’, ‘보다 값싸게’, ‘보다 튼튼하게!’ 이것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3대 구호였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구호는 서로 모순되는 말이었다. 빠르기 위해서는 값이 비싸야 하고, 튼튼하게 지으려면 천천히, 더 비싸게 돈을 들여야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3대 구호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오직 인간의 의지에 기대를 걸었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명감을 갖고 희생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던 공사감독관, 시공회사 등 모든 관계자들은 마치 군인들이 전쟁에서 전투를 하는 것처럼 비장한 각오로 공사를 추진했다. 당시 총감독이나 다름없던 박정희 대통령은 현역 군인과 건설부 공무원을 선발하여 합동으로 감독하도록 지시했는데, 그러다 보니 공사 추진 방식도 군대식을 따르게 되었다. 또한 그러한 마음자세와 사명감으로 근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군인이 아니면서도 거의 군인 정신에 가까운 긴장감을 가져야만 했다.


필자는 1968년 12월 1일부터 1970년 7월 7일 고속도로 준공때까지 감독으로 일했다. 1968년 2월초 당시 고속도로 건설을 주관하던 건설부는 경부고속도로 공사사무소를 설치하고, 경부고속도로 전체구간 중 양재-수원 간을 먼저 착수했다. 많은 감독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는 1968년 10월경 토목기술직 4급(현재의 7급상당)을 340여 명이나 대거 채용한다고 공고했다. 


필자는 당시 서울시 성북구청에 근무 중이었고, 합격한 지 두 달 만인 1968년 12월 1일자로 본부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다. 그 후 신규 임용자들은 휘경동에 있던 건설공무원교육원에서 고속도로에 관한 기술 사항과 공사 감독 요령 등에 관하여 14일 동안 교육을 받았다. 같은 건물내에 있던 건설시험소에서 도로공사에 필요한 현장 시험 방법과 실습도 병행해서 어느 정도는 기술을 축적하게 되었다. 필자는 천안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는데, 여기서 다시 입장에 현장사무실이 있던 오산-천안간 공구에 최종 배치되었다. 이제부터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힐 차례였다.


필자가 감독을 맡은 오산-천안 간 공구는 총연장이 39km였다. 이 구간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주)에서는 공구를 모두 6~7km씩 6개의 분공구로 나누었다. 따라서 감독 체제도 시공사에 맞추어 분공구별로 나누어 감독했다. 사무소장이 현역 공병 중령 주낙영인 만큼 전 구간 총감독은 임재규 소령이 맡았고, 분공구별로 2개씩 묶어 현역군인 대위급이나 건설부 소속 기사급이 맡았다. 


필자는 제 5, 6분공구로 발령받았는데, 그 현장은 입장천에서 천안IC까지였다. 감독은 건설부에서 파견 나온 오경섭 기사가 맡고, 필자는 동료직원 이동원과 5분공구의 보조 감독을 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현장으로 떠나면서 간단한 세면도구 등만 챙겨서 갔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훈련소를 나온 훈련병이 예하부대로 배속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필자는 입장에 있는 현장사무실로 찾아가서 현장숙소에 임시로 여장을 풀었다. 현장사무실과 숙소는 합판으로 지은 가설사무실이었는데, 겨울철이라서 몹시 추웠다. 숙소에는 그 당시 보편화되어 있던 연탄(19공탄) 난로를 피웠는데, 사무실은 모래판 위에 설치한 석유난로를 써서 그나마 관리가 나은 편이었다. 사무실 집기는 철제 책상 몇 개와 합판으로 만든 설계도면 걸이가 전부였다. 


전화기 역시 군대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이었다. 손잡이를 돌려서 신호를 보내는 군용 전화기였는데 직렬로 연결하여 사용했다. 천안공구사무소에서 긴급히 통보할 사항이 있으면 손잡이를 마구 돌리게 되는데 1공구부터 6공구까지 일제히 신호가 간다. 그러면 공구마다 모두 수화기를 들어보고는 자기네 분공구 전화통보 사항이 아니면 알아서 끊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남는 사람과 통화를 하는 방식이었다. 


근무복장은 감독관 모두 똑같은 작업복에 신발은 대부분 군화를 신었고, 건설마크를 단 작업모를 썼으며, 왼팔에는 ‘감독’이라고 새긴 완장을 찼다. 영락없는 군인 모습 그대로였다. 필자가 현장에 배치되어 근무할 당시에는 현장 작업 내용이 주로 토공 및 구조물 작업이었다. 그런데 성토한 노면에 눈이 내리면 그 눈이 다 녹을 때까지 작업을 못하게 되었다. 공정이 급한 상황에서 눈이 다 녹을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이 내리는 날이면 공사감독부터 시작하여 시공회사 직원들까지 총동원되어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어야 했다.


현장 온 지 한 달 만에 결혼하다


경부고속도로 현장 근무를 시작한 지 약 한 달쯤 지나 1969년 1월 15일, 필자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 처갓집이 마침 분공구 현장사무소가 있는 인근 동네인 성환이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너는 현장에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벌써 아가씨를 꼬셨느냐?”며 필자의 연애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사실은 서울시 성북구청에 근무할 때 대학교 동창 이은수 친구의 중매로 알게 되어 이미 약혼까지 하고 결혼식만 남겨둔 상태였었다. 며칠간 휴가를 얻어서 결혼식을 치르고, 아내는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에 어머님과 함께 남겨두고 혼자 현장으로 다시 내려와야만 했다.


1969년 2월초, 필자는 입장에서 삼환기업이 시공하고 있던 천안~목천 간 공구로 다시 배치되었다. 이곳은 육사 21기 출신 이성규 대위가 주감독으로 이미 근무를 하고 있었고, 먼저 배치를 받은 박준규 기사보가 토공과 구조물의 보조감독으로 이미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사 공정면에서도 토공이 상당히 추진된 상태였다. 필자가 이곳으로 배치되자 주감독인 이성규 대위는 필자를 구조물담당 보조감독으로 일하도록 조정해 주었다. 


이곳에서 필자는 현장 내용을 파악하면서 삼환기업의 작업 팀들이 3개소의 소교량과 암거 등을 시공하는 것을 감독했다. 그때는 동절기였으므로 콘크리트를 타설한 후 연탄불을 피워 보온하면서 시공을 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연탄불이 너무 세서 콘크리트가 급결하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연탄불이 꺼져서 콘크리트 표면이 동상을 입기도 했다. 


그리고 구조물을 빨리 준공하기 위해서는 건설행정 절차인 설계 변경이 필요했다. 설계 변경이라는 개념을 잘 몰랐던 필자는 우선 회사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소교량과 암거, 배수관 등 변경된 수량과 내역을 파악한 다음, 변경 사항을 반영한 설계도서 및 내역서를 작성하여 천안공구사무소에 제출했다. 그때는 설계 변경을 하려면 우선 현장에서 정확히 산출하여 작성한 설계내역서와 수량 및 단가산출서 등을 공구사무소에 제출하면 공무담당과 공사과장의 책임 하에 일정기준에 따라 다시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런 다음 이것을 서울 을지로 3가에 있던 경부고속도로 본부사무소의 설계과에 제출한 뒤 최종 승인이 나야만 설계 변경이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


<대한건설진흥회 발간 ‘국토교통인의 향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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