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이전 삼국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고 찬란한 문화적 유산을 남긴 백제. 공산성은 그 백제의 도읍이었던 웅진을 지켜온 왕성(王城)이자, 당시 뛰어난 토목건축 기술을 총망라한 문화유산이다.
공산성은 백제 문주왕 원년인 475년, 한성에서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이주한 후 성왕 16년(538년)에 사비로 옮길 때까지 도성으로서의 역할을 했고, 그 후 통일신라·고려·조선 시대에도 행정과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됐다.
국내에선 사적 제12호로 등재됐고, 지난 2015년에는 공주 무령왕릉, 왕릉원과 함께 ‘백제역사 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백제의 독창적인 문화를 이룩하고, 이를 일본 등 주변국가에 전하여 고대 동아시아 문화번영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았다.
공산성이 있는 공산은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산봉(山峰)으로 이뤄졌다. 동쪽에 있는 산봉은 해발 110m, 서쪽의 산봉은 해발 85m다. 공주 공산성은 이 두 개의 산봉을 에워싸 자연스럽게 두 산봉 사이의 계곡부를 에워싸는 포곡식의 형태를 띠고 있다. 토성으로 알려진 동쪽구간 735m를 제외한 나머지 구간은 석성으로 이뤄졌다. 현재 대부분의 성벽은 조선시대 이후 재축조됐다.
공산성은 지난 1955년부터 매년 가을 공주시 일대에서 열리는 백제문화제의 주요 무대로도 유명하다. 특히 성 외곽을 따라 조성된 탐방로는 1시간 반 정도면 성곽은 물론 공주시가지와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모습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코스다. 공산성 방문자센터를 거쳐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금서루를 지나 북문인 공복루에 다다르면 송시열이 쓴 중수문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의 글귀와 함께 금강의 경치를 한껏 즐길 수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3년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해 공산성에 충청감영을 설치한 유근은 ‘소동파는 적벽강에 놀았으나 나는 창벽에서 놀고, 유양은 남루에 올랐지만 나는 여기 북루에 올랐노라’라는 글귀를 남기며 금강의 경치를 극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공산성 일대에 형형색색의 점등을 설치해 낮에는 물론 밤에도 화려한 야경을 볼 수 있어 가을 단풍을 즐기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