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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인의 향기>600년 풍파 극복…‘한양도성’의 역사적 가치
  • 편집부
  • 등록 2023-09-18 09:21:04
  • 수정 2023-09-18 09: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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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도성의 도시계획적 가치 - 이주철


지도에서 보았던 도시 성곽


일제강점기 때의 세계 지도를 보면, 파리의 성곽은 약간 찌그러진 원형에 가까운 모양이었고, 베이징은 정방형의 내성과 그 남쪽에 잇대어 가로가 긴 직사각형의 외성이 접하여 있는 형태였다. 서울의 성곽은 선형이 꼬불꼬불하면서 서쪽과 동쪽의 많은 부분이 끊어져 있고, 성벽의 길이도 절반 정도였으므로 좀 초라하게 보였다. 1980년대 이후 파리를 여러 번 다녀왔고, 2000년대에 베이징을 방문하였는데, 시내에서 성곽이 보이지 않았고, 여행 안내서에서도 ‘파리성곽 답사’나 ‘베이징 도성 관광’ 같은 것은 없었다.


서울 성곽 가치의 재발견


서울시청에 ‘한양도성 도감’이라는 좀 독특한 이름을 가진 부서가 있어 파리와 베이징 성곽의 귀추가 궁금하여 문의한 바, 파리 성곽은 1880년대 철거되었고, 베이징은 문화혁명 때에 철거되었다는 놀라운 답변을 들었다. 도시권 인구 2000만 명 정도의 수도 중에서 성곽을 가진 도시가 어느 곳인가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우선 고대로부터 살펴보니, 4대 고대도시 중 카이로, 아테네, 로마는 수도이나 성곽이 없고, 시안은 3000년 전부터 주나라, 한, 위, 수, 당나라 등 당대 최대의 나라를 포함하여 총 13개 왕조의 수도였으며, 1421년 명나라 때 축조된 성곽 13.7km, 높이 12m의 위압적인 성벽이 있지만 현재는 수도가 아니다. 


AD 330년부터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이름으로 동로마제국 1123년간의 수도였고, 이어서 이스탄불로 470년간의 오스만제국을 합하여 약 1600년간 지중해 일대와 동유럽, 중동의 넓은 땅을 지배하였던 두 거대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견고한 성벽을 가지고 있으나, 아쉽게도 지금의 튀르키예의 수도는 앙카라이다. 따라서 많은 인구에 성곽을 가지고 있으면서 수도인 도시는 서울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양도성


▶서울 성곽의 명칭을 왜 ‘한양도성’으로 했나?=1963년 1월 21일 처음 국가문화재로 지정할 때 조선왕조 건국 시 축성된 한양성곽을 ‘사적 제10호 서울성곽’이라고 한 후, 50여 년간 ‘서울성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서울성곽의 축성목적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서울한양도성’으로 변경하게 된 것이다. 한양도성은 전란 대비를 위해 쌓은 성곽이 아니라, 수도 한양의 권위와 품위를 위해 두른 울타리다.


▶한양도성 축성=1394년 8월 13일 한양을 조선왕조의 신도읍지로 정한 후,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는 총 길이 18.6km인데 평지는 토성, 산지는 석성으로 계획되었다. 1398년 가장 규모가 큰 숭례문과 누각 등도 순차적으로 완성되었다. 1422년 전면적인 성곽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고, 토성은 없애고 성곽 전체를 석성으로 수축하였다. 1704년부터 6년 동안 대대적으로 한양도성을 정비한 후 서울의 외성 북한산성을 완공하였다.


▶도성의 훼철=1899년 서대문 밖에서 청량리까지 전차궤도를 부설하였는데, 처음에는 돈의문과 흥인문의 홍예를 통해 전차가 운행되다가 이후 돈의문이 헐렸다. 1907년 광화문 용산 간 전차 부설을 위하여 숭례문 북측 성벽이 철거되었다. 1914년 소의문을 철거하였고, 1926년 경성운동장 건립, 1928년 조선신궁 건설과 같은 대규모 사업이 진행되면서 성벽의 훼철은 확대되었다. 그 결과, 한양도성은 총 길이 18.627km 중 10.5km만 남게 되었다.


▶성벽보수와 복원=5.16 후, 1961년 창의문 지역을 시작으로 인왕산 구간 보수, 광희문 숙정문 복원 등 복원사업도 활기를 띠었다. 1975년 삼청지구 성벽 정비를 시작으로 대규모 성벽 정비가 시작되어 성북지구, 광희지구, 청운지구, 삼선지구 등 성벽의 대부분이 1980년대까지 정비되었다. 그리하여, 총 길이의 70%인 13.1km가 옛 모습을 되찾았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과거에 자진 철회했었지만, 재신청이 필요하다. 세계 유산 등재에 오르려면, 유네스코가 내세운 특정한 기준 10가지 중 하나 이상을 만족시켜야 한다. 한양도성은 10가지 기준 중 4가지 항목에 부합하나, 중요한 것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관건이다.


한양도성의 특징은 첫째, 평지와 산성의 구조를 결합한 독창적인 한국적 성곽이고 그 안에 궁궐, 종묘, 사직, 관청, 시장, 주거지를 포함하고 있는 대규모 도성 유산이다. 둘째, 전체 길이 18.627km로 현존하는 세계 수도의 성곽유산 중 규모가 가장 크며, 현재 13.1km 구간이 원형 또는 복원된 상태이고, 각 시기별 축조형태와 수리기술의 증거가 기록과 실물유적으로 남아있다. 셋째,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여 석재로 축조된 성곽은 내4산의 굴곡과 도성의 안팎이 함께 조망되는 뛰어난 역사도시 경관을 보여준다. 넷째, 전국 각 지역 백성들의 공역으로 축조해 구간마다 담당 장인이 실명으로 새겨져 있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재검토=과거의 경험을 잊으면 발전이 없다. 한양도성은 서울시민의 삶과 유리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자기 나라 사람들이 제대로 향유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고 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세계 유산에 등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성곽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 인왕산, 남산은 도시계획상 도시자연공원이고, 낙산지역은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북한산성의 대부분은 북한산 국립공원에 속해있다. 한양도성은 한강과 더불어 광대한 면적을 점유하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 공간자산이다. 규모가 큰 만큼 그에 상응하는 관심과 노력과 투자를 필요로 했다.


개방된 지 10년 되었지만,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민들의 성곽활용과 애착심을 제고하여야 한다. 즉, 접근성 향상은 창의문길, 삼청동길, 북악산길, 인왕산길 등 가급적 기존도로를 사용하고, 부득이할 경우 도로확장 신설도 고려해야 한다. 적정 규모의 주차장 설치는 필수적인데, 근거리이면서 사적 보호에 지장이 없고 자연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에 설치해야 

될 것이다. 삼청터널 부근 등 산 밑에 지하주차장 설치를 추천할 만하고, 엘리베이터 등의 시설도 필요하다. 셔틀버스, 소형버스 노선개설은 성곽답사, 관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시로 문화재청과 긴밀한 협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맺으며…


견실한 준비를 하여 국민들에게 역사적,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고, 궁궐도시 서울의 품격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도록, 세계문화유산등재에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파리와 베이징의 성곽이 도시 팽창과 개발 압력에 굴복하여 철거되고 말았으나, 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한양 성곽은 600여 년의 온갖 풍상을 견디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한양도성보다 238년 늦게 완성된 도쿄궁성은 한양도성 안처럼 5대 궁궐도 없다. 해자와 수로가 많고 건물은 황거와 궁내청 등 부속 건물뿐이다. 그럼에도 도쿄의 도시계획은 변함없이 궁성과 궁성 가까이 있는 마루노우치 일대를 유일무이한 도심으로 삼고 있다. 일본인들은 역사성과 상징성이 브랜드 가치를 좌우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은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베이징 등 거물 도시들도 갖지 못한 한양도성을 아끼고 가까이 하여 더 아름답고 한국적 품격을 지닌 도시를 만들어, 전 세계에 빛나는 서울이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대한건설진흥회 발간 ‘국토교통인의 향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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