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국토교통인의 향기> “건설기술 연구 핵심기지…위상 강화 절실”
  • 편집부
  • 등록 2023-03-20 15:51:59
  • 수정 2023-07-17 22:23:00

기사수정
  • 정동 28번지와 국립건설연구소② - 신현만


그 중에서도 최종완 소장의 말솜씨는 압권(壓卷)이었는데 어느 날 문교부 육영수(영부인 이름과 같음) 장학관을 만나기 위하여 문교부를 찾았다. 필자가 “소장님.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곳인데요.” 했더니 “가보면 알아.” 하시더니 육영수 장학관을 만나 연구소에 시험기계를 구입해주면 우리가 교육을 시켜주겠다는 내용인데 어찌나 조리(條理) 정연하게 말을 잘하는지 장학관은 “어.” “그렇지.” “어. 그려.” 하는 말만 되풀이 하고 거절을 하지 못하였다. 필자는 ‘필요한 사업비는 이렇게도 확보를 하는구나. 이럴 때는 이렇게 말을 하는구나.’ 하는 것을 배우고 ‘잘 모셔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1970년 1월 필자가 부산의 영남국토건설국으로 발령이 났다. 


다음날 아침 소장실에 들렀더니 “자네 운동했구나.” 하시어 “저도 몰랐습니다.”하고 “더 잘 모시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는 말씀을 드리고 연구소를 떠났다. 필자가 연구소를 떠나고 4년이 지난 1974년 10월 측지부(측량과, 지도과)의 업무가 독립하여 국립지리원으로 들어가고 1983년에는 제5공화국(1981-1987) 정부에 의해서 연구기관이 아닌 국립건설시험소로 개편되어, 전국적으로 SOC건설공사가 증가함에 따라 한때는 대구·부산·광주에 지역 분소를 두는 등 그 기능에 확대되는 듯도 하였다. 


그러다가 국민의 정부(1998-2002)가 들어서면서 그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만들어 놓은 한강수리모형동과 항만방파제수리모형동 등 연구시설을 폐기하고 국립시험소를 일산으로 옮기더니 1999년 1월 15일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이양되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을 보는 외국의 눈은 의아함으로 가득했는데, 일본 건설성 사람들은 “한국은 이상한 나라다. 일본은 연구기관을 확대하고 활성화 하는데 한국은 하나밖에 없는 국립건설연구소를 없애버리느냐?”고 했다. 이제라도 정부는 건설전문기술자를 양성하고 신기술개발 등 건설기술발전을 위해서 일산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을 ‘국립건설기술연구원’으로 개명하고 중앙정부조직으로 그 위상을 높여야 한다.


다시 앞으로 가서

 

1970년 1월 국립건설연구소를 떠나 시행청인 부산의 영남국토건설국으로 발령을 받고 부임하자마자 부여된 업무는 경북 감포항에 수중(水中)측량을 하고 작은 배가 정박하는 물양장(物揚場) 설계를 하는 일이었다. 초임자에게 너무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측량기를 챙겨 감포로 갔다. 다행히 대학과 김해육군공병학교에서 측량조교를 했던 경험이 있어 무사히 성공적으로 측량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설계를 끝내고 거제도 구조라항에 이어 제주도 화순항 방파제 공사 감독관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국가기간고속도로 기획조사사무소’로 발령이 났다. 


발령지는 건설부에 첫 발령을 받았던 정동 28번지 중부국 5층이었고 IBRD 세계은행 용역단에서 설계가 끝나면 호남~남해 고속도로 현장 감독으로 나가기 위해서 필수요원 5~60여 명이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건설부 이래 최대 인사이동이라 많은 사람들이 착공을 기다리다가 1971년 12월 7일 일시에 발령을 받고 대전~광주간 호남고속도로, 광주~부산간 남해고속도로 현장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필자는 부산 구포I/C~창원I/C 구간을 맡은 남해고속도로 김해공사사무소로 발령을 받고 임지로 갔으나 그렇게 기다리던 IBRD 용역단의 항공사진 측량성과가 실제 지형에 맞지 않아 우리 감독들이 다시 측량을 하고 설계를 해서 겨우 공사가 시작되고 돌관 작업으로 2년만에 준공이 되었다. 하지만 쭉 뻗은 고속도로 아스팔트 새 길을 시원하게 달려보지도 못하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흙먼지 자욱한 점촌~영덕간 국도확장포장공사 현장으로 가야했다.


이렇게 항만과 고속도로, 댐과 광역상수도 공사현장으로, 지방청과 건설부 본부를 오고 가다가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부이사관으로 승진하여 꿈에도 그리던 정동 28번지 서울지방국토관리청 도로시설국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60여 개소의 국도확장 포장공사의 품질과 안전을 확보하여 좋은 도로를 건설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건설공사 관리·감독이라는 것이 지역주민의 도로 노선변경 요구, 진입도로 신설, 더 많은 용지 보상 요구 등 민원이 산더미 같이 쌓이고, 현장 답사를 나가면 주민들이 포위하듯 둘러서서 발을 옮기지도 못하게 하고 민원에 대한 즉답을 요구한다. 심지어 뜻을 이루지 못한 주민들은 꽃상여 메고 서울청사 마당을 점령하고 굴건제복(屈巾祭服)에 꽹과리 치며 “청장 나오라”고 곡(哭)소리 내며 울부짖고 민원 담당 도로국장은 이들의 밥이었다.


민주화 이후 방종으로 치닫는 민주주의가 국력 신장에 걸림돌이 되고 공권력은 무력화되어 공직자는 지역주민의 시녀(侍女)가 되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소임(所任)을 다하지 못하는 처지에 와 있었다. 제도의 허술함도 마찬가지다. 지역주민이 보상협의에 불응하고 공사를 방해하다가 1, 2년 후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서 재감정하여 상승한 지가로 보상을 해주니 누가 보상협의에 바로 응하겠는가. 필자는 이 모순을 지적하고 토지수용제도개선을 요구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청에서 근무하는 동안 민원은 괴로웠지만 정동 28번지 1127평 대지 위에 지하 2층, 지상 5층, 연건평 1725평의 서울청사 신축공사가 착공되고 지하 10~20여 미터에 철근콘크리트 말뚝을 박고 시멘트풀을 주입하는 등 기초지반공사를 감독하면서 우리 청사를 튼튼하게 지어 새 청사에서 근무를 한다는 희망에 차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건설부 차관으로부터 “내일 아침 8시까지 과천청사로 나오라.”는 한 통의 전화를 접했다. 죄를 지은 일도 없는데 웬일인가 했는데 내용은 “건설부 산하 한국시설안전공단 부이사장 자리가 비는데 1급 자리다. 알다시피 건설부는 안전 불모지(不毛地)다. 갈만한 사람은 초대 안전과장을 지낸 申국장 밖에 없다.”고 하면서 “우리 건설부에서 안가면 감사원에서 가게 된다.”고 해 필자가 “지방청장이라도 해보고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겠다.”고 했는데 며칠 후 지방청장이 아닌 본부 건축기획관으로 발령이 났다.


기획관으로 오래 근무는 하지 못했지만 이 자리는 잠시 쉬어가는 자리일 뿐이고 서대문구 정동 28번지에서 건설부 첫 발령을 받고 여기서 영원한 짝을 만나 사랑을 하고 그러면서 34년의 긴 세월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건설부(특히, 내가 사랑했던 28번지)를 떠나야 했다. 서울 서대문구 정동 28번지는 훗날 서울 중구 정동길 28-5번지로 변경되고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자리에는 2016년에 발족한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발전전시관’이 있다. 1층에서 5층까지 사무실과 우리가 건설했던 도시, 주택, 건축, 수자원, 도로, 철도, 간선교통, 항만, 항공, 미래의 국토, 해외협력과 건설 등 건설에 관한 모든 것이 역사가 되어 입체로 된 모형들이 생동감을 더한다.


그리고 지하 1층 도서실에는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건설부와 건설교통부 선후배들이 기증한 1만 여권의 책과 설계보고서, 옛 건설부 로고가 들어있는 증서와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옛 추억을 새롭게 한다. 전시된 분야별 건설모형은 우리 건설부 건설인들의 자랑이며 자부심이다. 손자·손녀 손잡고 가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떻게 국토를 가꾸었는지 보여주고 국토보존에 대한 미래의 꿈을 심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한건설진흥회 발간 ‘국토교통인의 향기’ 발췌>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유경열 대기자의 쓴소리단소리
 초대석/이사람더보기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박상우 국토부 장관의 ‘공직 자세’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의 ‘현장 행정’에 건설업계가 지지와 함께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박 장관은 힘들어하는 건설 현장의 소리를 직접 듣고, 또 변화무쌍한 건설시장을 확인하기 위해 건설단체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 PF 위기·미분양 적체·공사원가 급등·고금리 ...
  2. 초대석 / 김종서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이사장 직무대행 지난해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이하 조합)이 창립 이래 역대 최대 32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이는 2022년 당기순이익 282억 원보다 무려 15.1% 증가한 수치다. 또 좌당 3만 3030원(1좌당 109만 2000원)의 지분가 상승으로 조합원에 수익 환원시켰다. 부동산 PF 위기·공사원가 급등·고금리 등 건설경기 ...
  3. 인터뷰/송명기 한국건설엔지니어링협회 회장 “국내 건설엔지니어링 산업의 지속 성장과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대가 체계와 적정 대가 지급’이다. 이는 우리 업계의 고질적인 수익성 문제와 젊은 엔지니어의 외면에 따른 고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협회는 관련 연구를 통해 정책적·...
  4. 제언 / 박희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정부의 스마트 건설기술 활성화 유도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마트 건설기술의 활용은 발주 및 입찰제도의 제약, 건설기업의 인식과 활용도 차이 등으로 인해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 건설산업 차원의 스마트 건설기술 도입을 촉진하고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적용 가능한 스마트 건설기술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
  5. <국토교통인의 향기>좌우 통행방식 다른 철도…한국 교통의 과제 철도의 숨은 역사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가 여·야의 주요공약으로 제시된 바 있었다. 수도권 광역교통대책의 필요성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공약대로 GTX가 건설된다면 현재 40%에 이르는 서울시의 지하철·전철 분담률은 더욱 높아지고, 다른 광역대도시 등에도 이 추세가 확...
한국도로공사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