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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인의 향기>세종시 수도 이전…시발점은 ‘1976년’ 이었다
  • 편집부
  • 등록 2023-08-13 21:09:50
  • 수정 2023-09-18 09: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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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수도를 옮겨야겠어! - 김의원


1976년 8월 18일 파랗게 질린 여비서가 전화통을 가리키면서 엄지손가락을 천정으로 추켜올리고 있었다. 받으니 각하였다. “장관하고 빨리 들어와.” 하곤 끊었다. 장관실로 가면서 걱정을 했다. ‘뭐라고 말하지?’라고. “각하께서 빨리 들어오랍니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디로 연락이 왔어?” 하는 것이었다. “장관실이 통화 중이라 제 방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랬더니 화장실로 가서 이를 닦고 면도를 하고 머릿기름까지 바른다. 군인 출신들의 상관에 대한 예절은 일반문관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청와대에 도착했더니 김정렴 비서실장과 임방현 대변인이 배석했다.


대통령께서 말문을 열었다.

“나 수도를 옮겨야겠어.”

이때 김재규 장관은 깜짝 놀라면서 “각하, 정말입니까?”라고 했다 그랬더니 “국장은 태연한데 장관이 왜 이래 놀래?” 하시면서 “나 오래전부터 연구했어!” “각하, 김국장 선산입니다.” “나 알아.” 하시면서 서재로 따라오라기에 갔더니 두툼한 앨범 한 권을 주셨다. 표지에는 ‘NC’라고만 적혀 있었다. 신수도(NEW CAPITAL)의 약자였다. 내용을 보니 6월 2일에 모인(某人)에게 연구할 것을 지시하여 20일 후인 22일에 보고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 모인이 누군가 하면 이때 막 총리를 그만둔 JP라고 짐작되었다.


각하는 ‘NC’를 주면서 또 한 장의 메모지를 주셨다. ‘임시행정수도 입지선정기준’이라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휴전선에서 평양과 같은 거리이거나 약간 먼 곳

2. 서울에서 자동차 또는 전철로 2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는 지역

3. 현재 경부선축에 가급적 근접한 지역으로서 기존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는 지역

4. 인근에 좋은 수원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

5. 자동차로 30분 내지 1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기존 중심도시가 한두 개 있는 지역

6. 가급적 우량농지가 포함되지 않는 지역

7. 배수가 좋고 가급적 낮은 구릉과 야산이 많은 지역

8. 대기 순환이 좋고 지진기록이 없는 지역

9. 20~30분 거리 내에 좋은 비행장 건설이 가능한 지역

10. 50만 명 정도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지역

11. 문화재 등 기존 특수시설의 철거대상물이 없는 지역


어느 전문가가 작성한들 여기서 단 한자를 빼고 넣고 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비밀작업반을 구성해서 종합청사 지하실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9월 21일에는 대통령께 중간보고를 했는데 이때는 정감록까지 풀이했다. 1976년 말까지 세 번에 걸친 중간보고를 마친 필자는 각하께 건의하기를 도시국으로서는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도시국 자체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니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이 순리란 점과, 각하께서 기자회견을 통해서 임시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만 말씀해도 서울로의 집중은 다소 주춤해질 것이라 했다. 그랬더니 각하께서는 이듬해 2월 10일 서울시 연두순시에서 이 구상을 밝혔다.


당시 건설부가 임시행정수도의 후보지로 건의한 곳은 지금의 세종시 인근이다. 세 번에 걸친 보고 과정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각하는 대전 인근의 대덕연구단지를 마음먹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대덕이 좋은데 과학기술처가 연구단지를 버려놓았다는 식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인류역사상 천도는 수없이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이유는 국가의식과 민족의식을 수도 이전에 연관시키기도 했지만 국방상의 문제가 주된 이유였다. 이 업무는 청와대의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에 이관된 후 1977년 3월 16일에는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 수립을 지시했고, 3월 26일에는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내에 ‘실무기획단’을 구성했는데 건설부에서는 유원규 과장, 김건호 계장을 파견했다. 같은 해 7월 23일에는 건설부가 주관하여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다. 


1977년 9월에는 6도 12시 51군 6000표준지에 대한 지가조사를 실시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행정수도건설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1979년 12월 30일에는 ‘백지계획’의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20세기에도 수많은 나라에서 천도가 있었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천도의 이유를 대도시 문제해결이나 낙후지역 개발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언제나 국가의 안전보장문제가 깔려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이 수도 이전문제를 지시할 때도 “휴전선에서 평양이 몇 km냐?” 하셨다. “잘 모릅니다.” 했더니 “160km야.” 하셨다. 그때 이미 각하는 상당히 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또한 그 당시 “지금 서울 인구가 720만을 넘었는데 만약 북한과 다시 전쟁이 난다면 내가 육군참모총장이라도 작전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 하셨다. 너 나 할 것 없이 남부여대하고 길거리로 나올 테니까 말이다.


이때 작성된 ‘임시행정수도 건설일정’에 따르면 1977~1980 준비단계, 1980~1981 계획단계, 1982~1986 건설단계, 1987~1991 이전단계로 잡았다. 일반적으로 수도 이전은 저성장기에 계획하여 이전의 효과를 고도성장기에 합치하도록 하는 것이 상례이나 우리는 역순으로 그 시기를 잡았다. 1976년 우리 경제는 1973년에 있은 1차 유류파동을 극복하고 고도성장의 절정기에 있었다.


이 계획을 추진하면서 건설부는 몇 가지 방침을 견지했다. 첫째, 임시행정수도는 통일될 때까지의 잠정조치이지 항구적인 천도가 아니란 것. 둘째, 수도 이전 후의 서울의 변동에 대한 대비책 강구. 셋째로 행정수도건설비는 정부재정으로 충당하고 신도시 건설비는 은행융자로 한다는 원칙이었다.


건설부가 손을 뗀 후 삼군본부가 대전으로 이전했고 2012년 말까지는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많은 행정기관들이 이전함으로써 1976년의 박 대통령 구상이 결실을 맺어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가 앞을 내다보는 예지가 있었더라면 ‘88올림픽 개최지를 서울로 한정하지 말고 서울과 대전으로 양분해서 시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렇게 했더라면 국토의 과밀과 과소 현상을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건설진흥회 발간 ‘국토교통인의 향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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